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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아침에] 2월의 바닷가

“엄마, 생일 선물로 무얼 받고 싶으세요?”     딸의 물음에 선뜻 대답하지 못했다. 딱히 필요한 물건도 없는 듯했다. 가지고 있던 물건도 정리해야 할 때가 아닌가. 친구가 칠순 기념 여행을 다녀왔다고 했다. 몸이 불편한 우리 내외는 여행도 자유롭지 못하다. 그동안 힘에 부치도록 일했으니 이제 쉬라며 운전대까지 내려놓은 채 ‘집콕’의 주인공이 되었다.      “응. 그냥 가까운 바닷가를 걷다 오고 싶다”라고 소박한 바람을 전했다. 둘째 딸이 김밥을 싼다고 분주했다. 어렸을 적 가족 여행에서 먹던 김밥의 추억이 생각났던 게다. 오이, 시금치, 달걀, 우엉, 참치, 햄은 저마다 고유한 색과 맛을 뽐내며 어우러졌다. 발대 속에서 꾸우욱 눌려 서로 조화를 이루었다. 생일 소풍은 김밥만으로 충분했다. 우리의 생이 성취한 것이 아니고 주어진 것이라는 걸 깨달으면서.     나의 귀가 엄마의 배 안에서 세상으로 나온 귀빠진 날. 나에게 연결된 탯줄이 잘리고 공기를 가르는 울음소리가 터져 나와 한 생명이 독립했던 날이다. 벅찬 기쁨으로 축하받았을 것이다. ‘참 잘했다’라며 나를 다독이고 싶은 날이다.     해마다 새 달력을 받으면 가족의 생일을 빨간색으로 기록한다. 가족의 생일을 축하하기 위해서다. 어릴 적엔 “내가 나이가 더 많아”라며 손가락을 펴 자랑했다. 그땐 나이가 많으면 세상을 이긴 듯 어깨에 힘을 주었는데, 이젠 나이의 숫자 하나가 늘어나며 나이 듦의 무게가 더해진다. 그 무게가 버겁게 느껴지며 마음가짐을 바꾸어 본다. 겉보다는 내면을, 결과물보다는 관계 중심으로 전환해 보련다. 연륜 속 깊어져 가는 시간이 선물이라 생각한다.     올해가 내 칠순이란다. 한국 나이로 한 살을 보태어 70이라고 한다. ‘7’ 자가 내 앞에 다가오는 것이 두려워 내년으로 미루기로 한다. 자녀들이 기억하기 좋도록 음력 2월을 양력 2월에 지키니 더 빨라져 이른 봄이 된다.     2월에                     꽃 시샘 추위를 맞으며/ 30일을 채우지 못한 탓에                             열두 달 중 가장 짧은 다리로/ 빈 들 지나 봄 마중 간다   무녀리로 태어나/ 얼어있던 들판에/ 계절의 선두로 나서     봉긋봉긋 꽃망울을 여는/ 그 산도(産道)를 밟는다     어두운 세월의 흙 속에서/ 견디며 쇠약해진 몸으로                 겨울을 마감하는 문턱에서/ 썩어져 씨앗을 가르고     생명을 대지로 뿜어내며/ 봄빛으로 바꾸어 낸다       Montage Laguna Beach를 찾는다. 야생화가 해변을 노랑, 주황, 보랏빛으로 장식한다. 바닷바람을 맞으며 꽃망울을 피워내고 있다. 흔들리는 애잔한 모습이 대견스럽다. 보물섬이 윤곽을 드러낸 바위 등선 위를 정복하는 아이들의 등이 햇빛에 반짝인다. 넘실거리는 파도는 바위에 부딪혀 하얀 포말을 뿜어내고 깊은 바다 표면은 윤슬 되어 빛났다. 찰랑이는 파도 결 따라 모래사장을 걷는다. 울퉁불퉁 푹 파여 발걸음을 떼기 힘들다. 새 발자국을 따라가 본다.   한참 후 내 발자국을 남겼다고 생각하며 뒤를 돌아보니 밀려오는 파도에 쓸려 사라져 흔적이 없다. 우리 생의 지나간 자취도 고요뿐일 것. 그런데 파도가 휩쓸고 간 모래 위는 단단하고 매끄러워 걷기가 쉽다는 걸 알았다. 곱게 내려앉고 있는 석양을 바라본다. 맛있는 인생을 차려 놓는 생일 식탁이다.     주치의에게서 전화를 받았다. “미스에스 유, CT 결과에 이상이 없습니다.”  이희숙 / 시인·수필가이 아침에 바닷가 한국 나이 가족 여행 칠순 기념

2023-02-22

[독자 마당] 고무줄 나이

 2월에 아들이 53세가 됐다. 1월에는 막내 손녀가 13살이 돼 틴에이저에 합류했다. 손녀는 아주 대단한 것처럼 나이 자랑을 했다. 다음 달에는 손자가 16세가 되고 5월에는 큰 손녀가 18세가 된다. 식구가 많으니까 거의 다달이 한 살씩 더 먹은 나이에 대해 이야기를 하게 된다.     연초에 동갑 친구가 “아이구, 우리 나이가 벌써 82세가 되었네”라고 해서 “아니 왜 나이를 늘려? 나는 아직 80세인데”라고 했다.     내 대답을 들은 친구는 한국 나이로 따지면 그렇다는 것이다.     한국에서는 정월 초하루가 되면 “떡국 한 그릇 먹었으니 나이 한 살 더 먹었네”라는 말을 자주 했었다.     미국에 오니 한국과 다른 것 중의 하나가 나이 계산법이다.     지난달 22일자 중앙일보 오피니언 지면에서 ‘헷갈리는 나이 계산법’이라는 칼럼을 보았다. 글 내용에 공감도 돼서 재미있게 읽었다. 글의 필자는 한국인이 흔히 쓰는 나이 계산법은 태어난 순간부터 1살이 되기 때문에 12월 31일에 출생한 아이는 하루가 지난 1월 1일이 되면 벌써 두 살이 된다는 것이다.     이 같은 나이 계산법은 옛날 중국에서 왔다는 것도 칼럼을 통해 알게 됐다. 하지만 한국에서도 법률 관계 나이 계산은 서구식으로 하고 있다.     나는 41년생이다. 아직 생일이 돌아오지 않아 80세이다. 생일이 되면 그때 81세가 된다. 내 친구처럼 한국식으로 하면 지금 82세가 될 수도 있다. 그렇지만 병원에 가서 나이를 기록할 때는 80세라고 한다.     한 살이라도 젊게 말하고 싶으면 80세, 좀 늘리고 싶으면 82세라고 한들 누가 뭐라 하겠는가. 그 나이가 그 나이지….   그래도 나이 따져서 위계 질서 정하려는 한국인 특성을 볼 때 미국 나이 계산법이 아주 명확해서 좋다. 지금 나는 80세이다. 아직은 젊다. 정현숙 / LA독자 마당 고무줄 나이 고무줄 나이 나이 계산법 한국 나이

2022-0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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